메 이 트 온
  ON AIR

청와대의 저주

| 생활/풍수지리
ZyenYa 2022. 3. 20. 19:45

1948-1960 이승만 해외로 유배
1960-1962 윤보선 수차례 박정희에게 감금당함
1963-1979 박정희 독재자 피살
1979-1980 최규하 군사정변으로 뒤엎힌후 감시를 받는다
1980-1988 전두환 군정부독재자 사형선고에서 무기도형 으로 전환 일년후 특허석방
1988-1993 노태우 장군출신의 대통령 군사정변과 내란죄로 상사살인미수 및 뇌물죄로 감옥행
1993-1998 김영삼 사기죄 강제추방
1998-2003 김대중 선거사기죄 아들탐오죄로 감옥행
2003-2008 노무현 비밀정치자금사용으로 심사를 받다 09년 자살로 사망 
2008-2013 이명박  
2013-2017 박근혜 탄핵 감옥행
2017-2022 문재인  
2022- 윤석열  

 

{

풍수가 좋지 않은것이 아니라 풍기가 좋지 않다

하루 빨리 미식민지통치에서 벗어나는것이 급선무이다 

청와대는 일체가 미국의 수중에 장악되어있다

차리리 미국에서 집무할것이지 국민을 기만하는것밖에 더 되냐

태극음양팔괘도를 도적질해 국기를 만든 나라 

절에서 나온다고 중이 아니라던가 

한자를 쓰는걸 보면 조상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야 아닌것처럼 다 없애버려도 쓰고 있잖아

}

 

必死则生,生则死 위험한 경지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살아날수 있고 요행을 바라면 죽는다

죽을 각오를 하면 살고 살겠다고 버둥대면 죽는다

청와대의 지붕은 왜 청색일까 

오행설에 따르면 중간 토(노란색) 동쪽 목(청색) 서쪽 금(흰색) 남쪽 화(빨간색) 북쪽 수(검은색)

이에 따라 중국황제는 노란색의 용포를 입었고 동쪽에 위치한 한반도의 전통건축은 청색기와로 지어졌다

   
   

뒤에 있는 산도 녹색 지붕이 청색 뭔가 색상이 비슷하면서도 조화가 안되고 침침한 음기

쵸코가 젤 맛있을때 이런 색을 띠는데 이런 색으로 청와대 지붕을 바꿨으면 이런색과 흰색의 어울림이 너무 예뻐

산에 올빼미가 앉아 지켜보고 있는 느낌 너무 기운이 좋지 않냐? 귀신이 와도 달아나겠다

귀신소리가 나와서 말인데 귀신은 없다 그런데 귀신이 보일때가 있다 귀신이란 바로 살아오면서 뇌속에 저장된 기억이 필림처럼 보여지는것  

어떤 사람이 귀신이 보이냐면 물이 많은 사람 물체가 보이는것이 아니라 뭐가 있는 느낌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데도 스스로 놀란다 그리고 귀신이 있다고 소리를 친다 이게 왜 그러나면 몸과 마음이 너무 허약해졌을때 공포감에 질렸을때 죽을가봐 두려울때 뭔가 초조할때 기억속의 그림자가 꿈처럼 나타난다 잠들지 않았는데 꿈을 꾸는듯한 

사람의 기운이 약해질때 누가 따라오는것 같은 환각이 든다 기가 허약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사람의 몸에 물기운이 많을때 몸이 심하게 흔들렸을때 중심을 잡지 못했을때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신경이 쇠약해진다 

이런 증상이 있다면 물 커피 콜라 술 쥬스 이런거 적게 마시고 단백질을 보충하면 차츰 나아진다 운동을 하여 땀을 많이 빼고 될수록 몸의 습기를 날려버릴것 몸은 건조한것을 좋아한다 불을 쪼이는것도 좋다 몸에 물이 쪄서 그러는거니까 사주 볼러 다니지 말어 찌개 탕 국 육수 등 물많은 음식 안먹으면 나아져 이명도 마찬가지 도리야

사람은 많이 배울수록 지식이 쌓이는것같지만 많이 배울수록 신경이 쇠약해진다 그래서 기업을 하거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 신경이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사람들이 사주를 더 믿는다 예를 들어 남이 다 만들어논 휴대폰도 쓸줄 몰라서 낑낑 대는 사람 그렇다면 그런 휴대폰을 설계하고 만드는 사람은 몇배 몇백배로 힘들것이 아닌가 그정도까지 되기까지 얼마나 배워야하고 얼만큼 머리를 돌려서야 그런것을 만들수 있었을까 그러니 머리가 얼마나 힘들까 

 

인간의 뇌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예를 들어 설겆이 않하고 식기를 쌓아둔 주방을 매일 본다면 머리에 그런 그림이 저장이 되고 머리속도 정리가 안되고 복잡해진다 그러면 그런 복잡한 머리로 뭐가 잘 되겠냐 이걸 풍수지리라고 한다 사는 환경 생활하는 환경이 뇌속에 주는 영향을 뜻한다 매일 높은 산에 올라 높은곳에서 멀리 산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음이 확 트일거 아니야 반대로 집앞에 높은 산이 있다고 해봐 높은것에 눌려 숨막힐거 같고 마음이 억압되고 이걸 흉지라고 일컫는다

 

청와대 흉지설


  이러한 이유보다는 ‘청와대 흉지설(凶地說)’이란 찜찜한 소문이 더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청와대 흉지설을 처음 주장한 이는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다. 1993년에 최 교수는 “청와대 터의 풍수적 상징성은 그곳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터가 아니라 죽은 영혼들의 영주처이거나 신의 거처”(《한국의 풍수지리》)라면서 조선총독들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들이 신적인 권위를 지니고 살다가 뒤끝이 안 좋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여기에 풍수술사들까지 덩달아 진지한 성찰 없이 그 내용을 확대시키면서 청와대 흉지설이 굳어진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필자 역시 비판 없이 그 내용을 수용했었다. 그 당시 즉 1990년대에는 청와대를 들어가 보지도 못했고 주변 답사도 제대로 못했던 필자의 미숙함이 원인이었다.
 
  ‘신의 거처’, 즉 큰 사찰이나 성당이 들어서려면 풍수상 2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첫째는 흙산[肉山]이 아닌 돌산[骨山]이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터를 감싸는 좌우 산들이 완벽하게 감싸 주어야 한다. 즉 경복궁과 청와대의 내백호와 내청룡에 해당되는 경향신문사에서 조선일보사에 이르는 지맥(내백호)과 감사원에서 한국일보사로 이어지는 지맥(내청룡)이 좀 더 높고 길게 뻗어 나와 교차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두 지맥이 낮은데다가 서로 교차하지 못하여 내수구(內水口)가 벌어져 있다. 이곳이 신들의 거처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이 두 번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태종, “이곳은 물이 없는 땅”
 
  이 일대가 왕궁 터로서 역사에 등장한 것은 1000년 전 인 고려왕조 때다. 1101년 당시 숙종의 명으로 새로운 도읍지를 물색하던 윤관과 최사추가 이곳을 추천한다.
 
  “새로운 도읍지를 물색하라는 명을 받고 노원역(노원구 상계동), 용산(지금의 용산) 등 여러 곳을 살폈습니다. 모두 적당하지 아니하고 삼각산 북악 남쪽이 산 모양과 수세가 옛 문헌과 부합됩니다. 남향으로 하되 지형을 살려 도읍을 건설할 것을 청합니다.”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은 개경을 버리고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이곳을 정궁(正宮)으로 삼았다. 흉지설은 조선 초기에 잠시 대두됐다. 1404년 당시 임금 태종은 조준·하륜 등 대신들과 당대 최고의 풍수사 이양달·윤신달 등을 불러 이곳 터를 잘못 잡았음을 질책한다.
 
  “내가 풍수책을 보니 ‘먼저 물을 보고 다음에 산을 보라’고 했더라. 만약 풍수책을 참고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참고한다면 이곳은 물이 없는 땅이니 도읍이 불가함이 분명하다. 너희가 모두 풍수지리를 아는데, 처음 태상왕(이성계)을 따라 도읍을 정할 때 어찌 이 까닭을 말하지 않았는가?”
 
  그 당시 원로 풍수관료들(이양달·고중안)은 길지(吉地)임을 일관되게 주장한다. 또한 경복궁 터에 회의적이었던 태종도 이곳에서 나라를 다스려 그의 재위 시절에 조선의 기틀을 완성시켰다.
 
  이곳이 흉지라는 주장이 공식적으로 제기되어 논쟁이 된 것은 1433년(세종 15년)이다. 당시 풍수관리 최양선은 “경복궁의 북쪽 산이 주산이 아니라, 목멱산(남산)에서 바라보면 향교동(현재의 운니동 부근)과 이어지는 지금의 승문원의 자리가 실로 주산이 되는데, 도읍을 정할 때에 어째서 거기다가 궁궐을 짓지 아니하고 북악산 아래에다 했을까요”라면서 경복궁 흉지설을 제기한다.
 
  여기에 청주 목사 이진도 가세를 한다. 이진은 박학다식에 정치적 능력도 탁월하여 조정에서 신임을 받은 유신(儒臣)이었다.
 
  “대체로 궁궐을 짓는 데 먼저 사신(四神)의 단정 여부를 살펴야 합니다. 이제 현무인 백악산(북악산)은 웅장하고 빼어난 것 같으나 감싸 주지 않고 고개를 돌린 모양이며, 주작인 남산은 낮고 평평하여 약하며, 청룡인 낙산은 등을 돌려 땅 기운이 새어 나가며, 백호인 인왕산은 높고 뻣뻣하여 험합니다.
 
 
  세종, 직접 북악산에 올라 판단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의 동상. 세종은 경복궁이 길지라는 주장에 손을 들어 주었다.

  이러다 보니 세종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승정원에 지시하여 풍수에 능한 자를 찾아 논의하라고 한다. 임금의 명을 받은 도승지 안숭선은 황희·신상 등과 함께 직접 남산에 올라가 경복궁 뒷산인 백악산 산줄기를 살핌과 동시에 풍수관리 최양선·이양달·고중안·정앙 그리고 풍수에 능한 대신들로 하여금 논의를 하도록 한다. 이때 이들의 의견은 두 가지로 갈린다. 이양달·고중안·정앙과 같은 풍수관리들은 경복궁 길지설을 견지했고, 최양선 등은 흉지설을 주장한다. 경복궁 길지설을 주장하는 측의 의견이다.
 
  “백악산은 삼각산 봉우리에서 내려와 보현봉이 되고, 보현봉에서 내려와 평평한 언덕 두어 리가 되었다가 우뚝 솟아 일어난 높은 봉우리가 곧 북악이다. 그 아래에 명당을 이루어 널찍하게 바둑판같이 되어서 1만명의 군사가 들어설 만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명당이고, 여기가 곧 명당 앞뒤로의 한복판 되는 땅이다.”
 
  결론이 도출되지 않자 세종이 직접 백악산에 올라가 지세를 살피면서 동시에 양측의 주장을 청취하고 결론을 내린다.
 
  “오늘 백악산에 올라서 오랫동안 살펴보고, 또 이양달과 최양선 등의 양측 말을 들으면서 여러 번 되풀이로 살펴보니, 보현봉의 산맥이 곧게 백악으로 들어왔으니 지금의 경복궁이 제대로 된 명당이다.”
 
  이어서 최양선을 “미치고 망령된 사람으로 실로 믿을 것이 못된다(狂妄之人, 固不足信)”고 혹평한다.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과 단종 역시 최양선을 싫어하자, 최양선은 고향 서산으로 은퇴한다.
 
  세조가 집권하자 최양선은 다시 경복궁 흉지설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려 세조와 대면할 기회를 갖는다. 1464년(세조 10년)의 일로 그때 최양선 나이 80이 넘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후배 풍수관리 최연원에게 여지없이 논박당한다. 세조는 나이 많은 최양선을 벌하지 않고 웃으면서 의복을 주어 내보낸다. 이때 장면을 사관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성질이 우활하고 기괴하며 험악하여 자기 소견만이 옳다 하고 … 술법을 잘못 풀면서 음양·지리에 정통하다고 하니 천하의 미친놈(天下之妄人)이다.〉
 
 
  “그곳에 살았던 3대를 보라”
 
  결국 경복궁 흉지설은 최양선 한 사람에 의해 집요하게 주장된 셈이다. ‘터의 좋고 나쁨을 보려거든 그곳에 살았던 3대를 보라[欲知其吉凶, 先看三代主]’고 했다.
 
  경복궁에서 통치했던 조선의 임금을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태종에 이어 세종도 이곳 경복궁에서 집무하면서 우리 영토를 백두산까지 확장시켰다. 지금의 한반도 모습이 갖추어진 것도 이때였다. 또 세종 때 한글이 만들어졌다. 우리 문자를 만듦으로써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자기의식’을 갖게 했다. 우리 민족사의 큰 업적이다. 광화문광장에 세종상이 세워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아들 세조는 왕권확립과 함께 문화를 크게 융성시켰다. 그의 손자 성종은 《경국대전》을 완성·반포했다. 조선의 전성기는 바로 이때였고 그 활동무대는 경복궁이었다.
 
  조선왕조가 이곳 때문에 망했다는 풍수술사들의 말도 있으나 세계 역사상 한 왕조가 500년이 지속된 것도 드문 일이다. 왕조 평균 수명이 200년 안팎이니 그보다 두 배 이상의 수명을 누린 셈이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으면서 절대빈곤을 해결했고, 산업화에 성공하여 경제대국의 토대를 마련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때는 올림픽을 치러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존재를 알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월드컵 4강 신화가 만들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민 대통령으로서 민주주의를 진일보시켰으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탄생시켰다. 근대화에서 민주화로 그리고 세계화로 우리나라는 진보해 왔다.
 
  대통령들의 말로가 불행했다면 그것은 개인의 불행이었지 국가의 불행은 아니었다. 그들은 본래 ‘역사의 하수인’이었다. 이성(Vernunft)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역사 속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공물로 삼지 않고 정열과 야망을 지닌 개인을 활용한다’는 것이 헤겔(Hegel)이 말하는 ‘역사의 하수인’론이다. 그들은 때가 되면 용도 폐기되어 가차 없이 버려진다. 알렉산더·카이사르·나폴레옹 등 세계적 영웅들도 결국 ‘역사의 하수인’일 뿐이다. 역사가 진보하는 과정 속에서 겪어야 할 대통령들의 운명이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는 정열과 야망을 가진 이들이라면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다. 땅이 두려워 집무실을 옮긴다면 지도자의 운명을 회피하는 것이다.

청와대는 풍수상 흉지(凶地)인가?   ChosunPub(조선펍) >

 

'생활 > 풍수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둘기가 베란다에 오면  (0) 2023.06.16
층수를 고르는 법  (0) 2022.06.29
높은 침대 VS 낮은 침대  (0) 2022.03.11
[톡]섣달그믐에 밤새는 이유  (0) 2022.01.31
다리없는 소파 VS 다리있는 소파  (0) 2021.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