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는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세계적인 인물이다.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성장했음에도 세계신기록을 11회나 경신하며 스포츠 영웅으로 우뚝 섰다. 은퇴한 뒤에도 엄청난 관심과 사랑을 받는 스타다.
김연아 선수의 화려한 점프와 회전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런 몸짓이 가능한가?’ 하며 입이 떡 벌어진다. 그러나 중력을 거스르는 듯 날렵한 몸짓을 하는 그녀도 물리법칙을 비껴가는 것은 아니다. 얼음판 위에서 펼치는 화려한 스케이팅 기술의 원리는 무엇일까?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의 신발은 왜 다를까?
피겨스케이팅에서 필요한 스케이트 날은 일반적인 스케이트 날과는 다르다. 빨리 달리기보다는 점프와 회전 같은 다양한 동작을 잘 수행할 수 있어야 해서다. 날이 긴 신발을 신고서는 점프하고 공중에서 회전한 다음 착지하는 순간 마찰이 주는 힘을 받고 몸이 튕겨나갈 것이다. 달리면서 점프를 하려고 발로 땅을 미는 순간에도 미끄러질 것이다. 그래서 피겨스케이트의 날은 짧고 두껍다. 앞쪽에는 점프할 때 사용하기 위한 톱니 모양의 요철이 있고, 회전할 때 마찰력의 영향을 덜 받도록 날이 살짝 둥글다.
아름다운 스핀의 원리, 회전관성
얼음판에서 걷는 것도 어려운데 빙그르르 회전하는 동작은 그저 그림의 떡처럼 보인다. 몸을 돌리려고 비트는 순간 하체는 반대 방향으로 비틀어지면서 쿵! 넘어지기 십상이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은 어떻게 제자리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아름답게 회전할까? 이를 이해하려면 회전관성을 알아야 한다.
회전관성이란 회전하는 물체가 그 운동을 유지하려는 성질이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팽이의 움직임을 떠올려 보자. 팽이는 아래쪽이 뾰족하다. 어떤 물체든 아래쪽이 좁으면 중심이 불안해서 넘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팽이는 회전하는 동안에 안정적으로 서 있다. 그리고 시멘트 바닥처럼 거친 표면보다 얼음판처럼 매끄러운 표면 위에서 더 오래 회전한다. 이는 어떻게 가능할까?
앞서 관성이란 직선운동하는 물체가 외부의 힘을 받지 않는 한 그 속도를 유지하려는 성질이라고 했다. 운동하는 물체에 직접 힘을 가하면 움직이고 힘을 주지 않으면 멈추는 것은 지표면의 마찰력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김연아 선수라도 운동화를 신고 시멘트 바닥에서 한 발로 계속 회전하라고 하면 못할 것이다.
돌아가는 팽이도 마찬가지다. 땅과의 마찰력이 강하면 멈춘다. 마찰력이 약한 경우 팽이를 돌리는 힘이 사라지더라도 바로 정지하지 않고 조금 더 돌다가 멈춘다. 그리고 마찰이 아예 없다면 속도를 유지하면서 계속 돌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회전관성이다.
물체는 운동 상태를 유지하는 성질이 있다(운동량 보존의 법칙). 이 법칙은 직선운동뿐 아니라 회전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움직이는 물체가 운동의 빠르기와 방향을 유지하듯이, 회전하는 물체도 그 속력과 회전 방향을 유지한다. 팽이는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 때문에 넘어지지 않는다.
회전관성과 회전중심의 관계
그런데 회전관성은 일반적인 관성과는 다른 점이 있다. 직진하는 물체의 관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운동하는 물체에 질량을 공급해 주거나 질량을 버려야 한다. 달리는 자전거에 한 사람이 더 올라타면 질량과 관성이 커져서 속도도 떨어지고 멈추는 것도 쉽지 않다.
반면 앞 장에서 설명했듯이 두 사람이 탄 자전거 뒤에 한 사람이 뛰어내리면 가속이나 멈추는 것이 쉽다. 이처럼 관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질량을 넣거나 빼야 하는데, 회전관성은 질량의 변화 없이도 가능하다. 회전관성에는 회전하는 물체의 질량뿐 아니라 질량이 회전중심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직선운동을 유지하려는 관성은 질량이 클수록 커지지만, 회전운동을 유지하려는 성질인 회전관성은 회전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질량에 의해 커진다. 질량이 회전중심에 있는 경우 쉽게 회전을 하지만, 질량이 회전중심에서 멀어지면 회전운동을 만드는 데 좀 더 큰 힘과 에너지가 들어간다.
회전관성을 I, 질량을 m, 회전 반경을 r이라고 할 때 공식은 다음과 같다.
회전관성관성모멘트은 질량이 m인 물체가 회전축으로부터 r만큼 떨어져 있다고 했을 때, 떨어진 거리의 제곱과 질량의 곱으로 나타난다. 1킬로그램의 쇠구슬을 1미터 지름의 원운동으로 돌리는 것보다 2미터 지름으로 돌리는 것이 네 배 더 힘들고, 정지시키는 것도 네 배 더 힘들다는 뜻이다.
스케이트 날로 정교하게 조정하는 마찰력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점프하는 순간을 살펴보자. 공중으로 도약한 다음 회전할 때 팔과 다리를 잔뜩 움츠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각운동량회전하는 물체의 운동량이 보존됨을 이용해 회전관성을 줄여 주기 위한 방법이다. 각운동량은 회전관성과 각속도시간에 대한 각의 변화의 곱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회전관성이 줄어들면 각속도가 증가한다. 즉 최대한 많이 회전하기 위해서 몸을 움츠린다. 피겨스케이팅에서 점프는 공중에서 1회 이상의 빠른 회전을 마치고 착지해야 하는데, 얼마나 많이 회전하는지에 따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화려한 동작을 포기하고 몸을 잔뜩 움츠리는 것이다. 공중에서는 외부의 힘인 마찰력이 없어서 각운동량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출 수 있다. 이때 몸의 질량을 바깥으로 분산시키면 회전 속도가 줄어들 것이고, 몸의 질량을 회전중심으로 바짝 모으면 회전 속도를 올릴 수 있다.
얼음판 위에서 회전하는 동작인 스핀 또한 피겨스케이팅을 돋보이게 하는 화려한 기술이다. 표면에 줄무늬를 그리며 빙빙 도는 팽이와도 같은 움직임을 선보인다. 점프만큼 난이도가 높지는 않지만,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것이 관건이다. 한 차례 기술을 해낼 때 평균 1초에 2회전을 하며 총 20회 이상을 한다. 선수들이 스핀하는 모습을 보면 회전이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속도를 변화시키는 비결도 회전관성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지면에서 한 발을 회전 중심축으로 두고 나머지 발과 몸동작으로 회전축에서 몸의 위치를 바꾸면서 회전관성을 조절한다.
피겨스케이팅의 꽃인 점프에서 대부분의 여자 선수들은 점프하기 직전에 이동 속도를 확 낮추는 경우가 많다. 빠르게 달리는 방향에 수직으로 힘을 가하는 일이 엄청난 부담이기 때문이다. 착지할 때도 위험하다. 앞으로 나가려는 관성과 회전력이 충돌하므로 넘어지는 선수가 많다. 그러나 김연아 선수는 빠른 속도를 유지한 채 몸을 던지다시피 뛰어오른다. 여기에 깔끔한 착지까지 성공하며 높은 점수를 얻는다. 피나는 노력 끝에 빠른 속도를 감당할 만큼 스케이트 날의 마찰력을 정교하게 조정해 내며 세계 정상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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