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공산당이 국민당을 대만에 몰아내고 새중국이 건립된다.
가령 국민당이 이겼다면 지금의 중국은 발달한 자본주의국가가 되여있을것이 아닌가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역사는 가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의 결과이기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될수밖에 없는 이유
당시 중국은 땅이 개인의 소유였다.중국은 인구가 많고 청조의 부패,일제의 침략,군벌들의 내전을 겪어 이미 법도가 없고 부패와 나쁜 세력이 광기를 부리는 황페한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착취과 굶주림에 시달렸고 가난한 애들은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심지어 자녀까지 팔아야 했던 상황이였다. 가난한 농민들은 지주의 땅을 세를 내고 맡아서 지어야 했고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공장주들의 착취를 받아야 했다.
보태어말하면 당시 일제통치시기에 지금의 조선과 한국땅에서 간도땅으로 건너간 많은 사람들이 땅도 없이 산속에 사는 날강도들의 총에 맞아 죽기도 하고 애를 낳아도 이불도 없어 벼찦속에 낳아야 했다고 한다. 피눈물이 흐르는 조선의 식민지역사 그 시대의 인구이동으로 인한 지금의 중국동포가 형성된다.당시 서울이남 대구 부산쪽에서 건너간 사람들은 흑룡강성쪽으로 많이 이동했고 서울이북 강원도 함경도 에서 건너간 사람들은 길림성 룡정쪽으로 많이 이동했다.료녕성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인접한 자강도 양강도 쪽의 사람들이다.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나오는 함경도 말씨가 연변,자강도 말이 료녕에서 쓰이는 말씨이다.신기하게 인성과 인품이나 이런것도 그대로 유전이 됬다는게 놀라운 일이다.
본 과제로 돌아오면
이럴때 공산주의사상이 불어왔고 가장 선두에 선건 진보적인 학생들이였다.한국대만이 늘 말하는 중공이란 좀 공포적이기도 한 단어는 바로 이런 선진적인 학생들과 교육자들로부터 시작된 조직이였다.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싸웠고 끝내는 승리하게 된다.새중국이 건립된 이후 토지개혁을 실시해 당시 땅이 없던 사람들,한국과 조선에서 건너간 사람들에게까지 차별없이 땅이 분배되였다.더이상 착취와 압박이 없이 재해가 와도 조직에서 돌봐주는 평등한 사회가 된것이다.한국인들이 말하는 중국사람들이 예의가 없다는 것은 이런 평등한 사회구조에서 길러진것이다.자본주의처럼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선배후배이런것도 없고 사장님 부장님 대리님 이런것도 없다.집체소유이기에 직위가 있어도 억압이 없다.한국인들은 요증 공황장애 불안증 갑상선질병 이런것들도 많이 앓고 있는데 너무 억압된 사회계층구조로부터 생기는 병이다.나란 개념이 없이 눈치를 봐야하고 굽신거려야 하고 당당하지 못하게 살기때문이다.어쩌면 굴곡된 예의속에서 살아간다고 볼수 있다.
중국인들은 시끄럽다?
베이징에서 전철를 타보면 알겠지만 사실 조용하고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외국나가면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여행객이라서 그럴가.아님 지방에서 올라와서 상식이 부족한걸가
여하튼 이런저런 사람이 존재하는건 나라개념이 아닌 사람나름이다.어느 나라나 범죄자가 존재하듯 직장서 온하루 말이 끊기지않는 직원 그리고 언어가 다르면 귀에 거슬리게 들리게 된다.
중국이 빠르게 발전할수 있는 이유
속도 동력 다양성 영활성
중국 지하철은 이미 속도와 동력이 일본을 능가했다고 할수 있듯이 빠르고 온정하다.의자 태도 편리성 면에서는 더 발전해야 할듯.
한나라 두가지 체제 국유기업과 민영기업이 공존하는 사회구조는 발전에 많은 활력을 불어넣으며 영활성있게 분배를 할수 있다.
중국에서 필요없는 몇가지
청구서
도장이 필요없다 개혁개방하면서 도장이 사라졌다
영수증이 필요없다 수도 가스 전기 휴대폰의 비용은 사전에 카드 혹은 인터넷으로 미리 사는 구조이기때문이다
명함장 일본은 개나소나돼지나 다 명함장을 갖고있는듯하다
서류가 많은 일본에 비해 중국은 간편하다.
중국의 화장실은 더럽다?
드러운 곳은 진짜 드럽다 특히 공공장소나 여행 스포트 기차역전같은덴.
문이 떨어져나가고
물이 흐르고
휴지가 널려있고
바닥이 발자국
베이징 원명원에 가면 체험할수 있다 얼마나 드러운지.
휴지도 스스로 챙겨야 한다. 화장실엔 휴지가 없다.그리고 일본과 달리 휴지를 변기에 던질수 없다.
상대적으로 회사나 공항같은덴 깨끗하다.
나아가서 중국이 해야 할 일은
교육과 위생
질서와 규칙이다.
난동사건이후로 다니기 많이 불편해졌다
지하철 공항에서 각종 검사
지방에 내려가면 마켓가는데도 보따리검사
불신임과 비존중이 적라라하게 존재한다.서로 믿고 존중하는 관계가 사회적으로 부족해버렸다.
역에 음료수병을 들고 들어가면 검사인원이 한모금 마셔보라고 한다
철벽같이 검사하는바람에 치안은 보장되 예전보다 안전하다고 할수 있다
자전거가 도둑맞고 길가에 비렁뱅이가 있던 시절에도 거리는 그렇게 삼삼하지 않았다
태도가 더욱 억압적이다 특히 공무원 검사 표검사
인간이 많은 탓인지 그사람들도 지쳤는지 인간으로서의 예의을 보여주지 않는다
좋은 사람이 없는건 아니다. 어디 가나 좋은 사람은 있다.그런데 외국에 나간 사람들일수록 나쁜 사람이 많은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예로부터 사람과 사람사이가 진심으로 대하는 관계이다 반대로 사람과 사람사이에 선이 없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선이 없으면 선을 넘게 되고 진심이 통하면 지나치게 남의 일게 간섭하고 말이 많게 된다
진심은 본능에서 나오지만 예의는 절제에서 나온다
발전과 더불어 사회구조는 변화되여야 한다
진심이 아닌 예의가 오히려 조화로운 사회관계를 형성할수 있고
관리가 아닌 자발적인 행동이 질서를 유지할수 있다
관리가 지나치면 강박이 되고
진심이 지나치면 불편이 된다
교육이 아닌 학습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것이다
중국티비는 공장설비가 돌아가는 화면이나 중기계가 많이 나온다 전 사회가 생산에 몰두하는듯한 감을 준다
일본티비는 사고 범죄를 많이 다룬다
한국티비는 예능이 많이 나온다
인간의 뇌는 뭘 보면 뭐가 학습이 된다
뭘 보여주는가가 사회의 흐름을 지배한다
중국을 제대로 알려면 뉴스에 선동되지 말고
역사배경이 담긴 삼국시기의 드라마나 민국시기의 드라마를 보면 깊은 문화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를 할수 있다
다른 문화인 원나라 청나라를 거쳤지만 오히려 중국에 통합된 배경에는 다른 문화를 흡수해버리는 문화적 힘이 존재한다 일본의 한자 한국어의 발음배경에도 중국문화가 뒤받침하고 있다 일본은 성씨가 다르지만 한국은 성씨마저도 같은 성씨가 존재한다 이는 그 뿌리가 황하유역문명에서 뻗어나간것임을 알수 있다 성씨란 어떻게 온것인가 옛날 전쟁이 빈번히 일어나는 시기에 어느 한곳을 점령하면 그곳을 왕이 이름을 내려 공신에게 성곽을 상으로 주었다 그 지역 사람들은 모두 그 성곽이름을 따르게 되였는데 그것이 곧바로 성씨다 그 흔적은 장가촌 등 마을이름 자체가 성씨를 붙인 곳이 지금에 남아있는것에서 엿볼수 있다 옛날에는 송 원 명 청나라이름처럼 한글자가 제일 높다고 여겼기에 지금까지 성씨가 그대로 한글자로 내려오고 있다 일본도 원래는 성씨가 없었지만 국가적으로 성씨를 지으라는 명에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곳을 따라 이름을 짓다보니 두글자 밭이나 물 산 산밭 높은들 이런 성씨가 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