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짓밟힌 치욕과 비운의 삶
망우리고개를 넘어 경춘가도를 달리다 보면 남양주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 홍유릉이 보인다.
이곳에는 조선조 26대 고종과 명성황후 민비를 합장한 홍릉을 비롯해 조선 최후의 황제 순종과 순명효황후 민씨,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를 합장한 유릉이 있다.
주변의 울창한 숲에 고즈넉하게 둘러싸인 조선의 마지막 왕들의 안식처는 조금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 그것은 일본의 국권침탈 야욕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던 시기의 허수아비 황제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순종의 인생은 치욕과 비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순종은 1874년 고종과 명성황후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난 이듬해 세자에 책봉됐다가 1897년 대한제국이 성립된 후 황태자에 책봉된다. 황태자 책봉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순종은 암살 기도를 당한다.
황실의 통역관이자 고종의 측근이었던 김홍륙이 고종과 순종이 즐기던 커피에 다량의 아편을 넣었다. 고종은 곧바로 뱉었으나, 순종은 독이 든 커피를 마셨다가 치아를 잃고 며칠간 혈변을 누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1907년 고종이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했다 실패한 ‘헤이그 밀사 사건’ 이후, 일본의 압력으로 고종이 퇴위하고 순종이 왕위에 오른다. 외세에 의해 강제로 밀려난 아버지의 뒤를 이은 순종의 대한제국 통치의 역사는 국권 상실의 역사에 다름 아니었다.
황제에 즉위한 그해, 일본이 한국을 합병하기 위한 마지막 조치로 강행한 조약인 한·일신협약이 체결됐고 사실상 국내 정치는 일본인의 손에 넘어간다.
8월1일에는 일본의 압력으로 한국군을 해산했으며 12월에는 이복동생이던 황태자 영친왕이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혀가게 된다. 또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설립을 허가해 경제침탈의 길을 열어주게 됐다.
1909년 일본은 국권탈취를 위한 작업을 더욱 가열차게 진행한다. 7월에는 군부를, 10월에는 법부를 폐지해 정치조직을 통감부 기능 속에 흡수했다.
1910년. 일본은 이름만 앙상하게 남은 대한제국을 통째로 흡수한다.
일제는 순종에게 한·일병합조약에 공식적으로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순종이 끝까지 동의하지 않자 결국 당시 총리대신인 이완용이 대신 서명에 나섰다.
이로써 1910년 8월29일 조선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망하고 막을 내렸다. 순종은 일제가 주는 ‘이왕(李王)’의 직위를 받고 일본천황가의 황족에 편입돼 이왕가를 구성해 창덕궁에 머물렀다. 순종은 1926년 53세를 일기로 운명한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의 장례식날에 맞춰 6·10만세운동이 일어났지만 3·1운동처럼 확산되지는 못했다.
순종
1874년 3월 25일 - 1926년 4월 26일 (향년 52세)
甲戌 丁卯
이완용
1858년 7월 17일 - 1926년 2월 11일 13시 20분 (향년 67세)
戊午 己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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