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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서막] 아테네 vs 스파르타 전쟁의 시작 | 평화롭던 그리스는 왜 갑자기 미쳐돌아갔나?

| 방송/시사평론
ZyenYa 2026. 5. 15. 12:16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서막] 아테네 vs 스파르타 전쟁의 시작 | 평화롭던 그리스는 왜 갑자기 미쳐돌아갔나?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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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파괴적이었던 전쟁 중 하나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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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그 시작은 아주 작았습니다. 변방에 이름 없는 도시에서 벌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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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그리고 그 작은 불씨에 강대국들이 하나둘 개입하면서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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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전체를 27년간의 피바다로 몰아넣었죠. 더 무서운 건이 패턴이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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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고 있다는 겁니다. 2500년이 지난 지금 전문가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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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도 똑같은 함정이 작동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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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국처럼 두 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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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지금부터 고대 그리스의 파국으로 그 치명적인 전쟁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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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렇다면이 모든 비극은 어디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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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된 걸까요? 놀랍게도 그 씨앗은 승리의 순간에 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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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기원전 479년 그리스 연합이 페르시아 제국의 침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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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으로 막아낸 시점부터 시작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외부의 적을 물리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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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면 감춰져 있던 내부 문제가 붉어지기 마련이죠. 이때부터 함께 페르시아와 싸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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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연합은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중심으로 두 세력으로 갈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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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합니다. 애초에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같은 그리스 땅에 살면서 같은 언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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썼지만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스파르타는 비혹한 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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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해서 외부로 눈을 돌릴 필요가 없었고 폐쇄적인 사회로 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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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아테네는 척박한 땅이어서 외부 세력이 탐내지 않았고 그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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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를 감당하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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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는 애계해를 건너 이오니아 같은 먼 곳에 식민도시를 세우면서 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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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이자 무역 국가로 변모했고이 과정에서 개방적인 사회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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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외부의 적 페르시아는 물리쳤지만 내부에서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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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괴물이 자라나고 있었던 거예요. 하나는 민주정 아테네, 다른 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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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두정 스파르타. 아테네에서는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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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하고 투표했습니다. 반면 스파르타는 토론이 아니라 명령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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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전사 시민을 키원했습니다. 먼저 그리스 패권을 잡은 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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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였습니다. 기원전 500년경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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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년 뒤인 기원전 479년에 델로스 동맹이 만들어집니다. 맹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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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였습니다. 마라톤 평원에서 페르시아를 격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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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스 해전에서 크세르크세스를 물리친 승리를 이끌었기 때문이에요. 델로스 동맹은 겉보기엔 자발적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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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아테네 제국의 초석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해양 세력 아테네와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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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스파르타가 선명하게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이후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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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토클레스가 아테네의 성벽을 건설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아테네의 다음 대결 상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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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를 지목한 겁니다. 당시에는 성을 공격할 무기가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최강 육군 스파르타가 성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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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죠. 스파르타는 즉각 항의했습니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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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랑 싸우려고 그러는 거냐고 말이에요. 그런데 테미스토클레스는 스파르타를 안심시키는 척하면서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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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었고 결국 성벽을 완성시켜 버립니다. 이로써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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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으로 치달를 뻔했지만 그렇게까지 가지는 않았어요. 테미스토클래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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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72년 도편 추방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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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스파르타 정책을 펼치던 테미스토클레스가 실각한 후 친스파르타파 정치인 키모니 정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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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으면서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졌죠. 마라톤 전투의 영웅 밀티아데스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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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모는 댈 동맹군의 총지위관으로서 연전 연승을 거뒀습니다.이 승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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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보다 더 큰 상징이었습니다. 아테네가 그리스 패권의 중심으로 떠오른 순간이었죠. 그런데 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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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은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바로 델로스 동맹의 가행국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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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가 이미 이오니아에서 대거 빠져나간 상태였는데도 아테네는 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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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을 해체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마침내 낙소스 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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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소스 섬이 동맹 탈퇴를 시도했습니다. 그러자 아테네는 이들을 가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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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했어요. 이때 아테네는 처음으로 달콤한 맛을 알아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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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국에서 조공을 받는 그 만말이죠. 그리고 아테네는 서서히 제국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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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게 됩니다. 한편 아테네 권력의 핵심에 있던 키몬이 몰락하는 사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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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집니다. 기원전 464년 스파르타에 일어난 지진 때문이었는데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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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혼란을 틈타 국가 노예인 헬로트들의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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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지원을 요청했고 키모는 민를 설득해 기원전 4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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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중장보병을 스파르타로 보냈어요. 그런데 막상 아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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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군이 도착하자 스파르타는 아테네군에게 돌아가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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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합니다. 이런 스파르타의 행동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모욕감을 줬고 결국 키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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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임을지고 기원전 461년 도편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정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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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로 가는 길은 언제나 험란합니다. 키온 때문에 단 한 번도 정권을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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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했던 민중파 에피안테스에게 정권이 넘어가게 되어요. 에피알테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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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파인 동시에 반스파르타파였습니다. 그는 내부적으로는 귀족파들을 숙청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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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민주정을 도입했고 외부적으로는 스파르타를 고립시키는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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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쳤습니다. 한마디로 행동 하나하나가 스파르타의 심기를 건드렸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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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리스에서 아테네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들의 체제인 민주정도 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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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기 시작했는데이는 소수 엘리트가 다수 노예를 지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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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과두제 체제에 상당한 위협이 됐습니다. 일단 기원전 45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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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의 두 동맹국인 코린토스와 메가라 사이에 전쟁이 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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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약한 메가라는 스파르타의 중제를 요청했죠. 하지만 스파르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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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요. 결국 메가라는 스파르타와 동맹을 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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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동맹을 제안하게 됩니다. 아테네는 무척 기뻤습니다. 메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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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가치가 매우 큰 국가였거든요. 결국 아테네는 코린토스와 스파르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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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돌리는 걸 감수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아테네가 코린토스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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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을 떠났는데 당시 아테네 지도자는 페리클레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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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파 지도자였던 에피알르테스가 귀족들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암살당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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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에요. 에피알테스 뒤를 이은 페리클레스는 당대 최고의 연설가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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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을 설득해서 자기 정책을 지지하도록 만드는데 뛰어난 재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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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녔습니다. 그는 정권을 잡자마자 에피알테스의 과업을 이어받아 아테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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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고 테미스토클래스의 작업을 확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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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와 외항인 피레우스 사이에 거대한 성벽을 건설하기 시작했어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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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이 완성되면 아테네는 난공블락의 요새가 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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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스파르타는이 모든 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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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두려움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스파르타는 움직일 수 없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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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힘이 그렇게 세지 않아서 주전파가 전쟁에 나설 것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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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서 주전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오고 말았는데요. 바로 기원전 4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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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인들이 유일하게 해상에서 자신들에게 대적할 수 있는 아이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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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포위하고 코린토스를 굴복시켰던 겁니다. 결국 아테네는 타나그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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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스파르타와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투 결과는 스파르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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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스파르타측 피해도 만만치 않았죠. 지상 최강 군단 스파르타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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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지진 후 헬로트와의 전투로 시민군 숫자가 급격히 줄어든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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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력이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야말로 둘에게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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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는 전투였던 겁니다. 태배의 부상을 본 아테네는 위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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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꼈습니다. 결국 타나그라 전투가 끝난지 두 달 뒤 아테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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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노피타에서 보이오티아 연합군과 전투를 버려 크게 승리합니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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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를 계기로 아테네는 태배를 제외한 보이오티아 전 지역을 차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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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이어서 아이기나 섬까지 굴복시킨 아테네는 그리스 중앙과 앞바다 수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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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심지어 때마침 아테네와 피레우스를 연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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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벽이 완성되면서 아테네는 사방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누구도 쉽게 넘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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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는 도시가 됐어요. 자신감을 얻은 아테네는 이제 스파르타를 마음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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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린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파르타가 해군이 약하다는 점을 이용해서 펠로폰네소스 반도 외곽을 항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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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도시들을 습격했고 심지어 기원전 456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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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의 주요 왕국인 귀타이에 상륙해서 조선소와 도시를 불태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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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다.이 순간 아테네는 해군 제국에서 상륙 제국으로 진화했습니다.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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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는 함대가 없어서 아테네의 군사 활동을 그저 쳐다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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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그리스 전체가 아테네에 넘어갈 수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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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발의 상황이었죠. 그런데 바로 그때 아테네의 기세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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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에 꺾어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기원전 4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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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군이 이집트에서 페르시아군에게 패해 40척의 배와 8,명의 병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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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게 된 겁니다. 최종의 병사와 배를 잃어버린 아테네는 그리스에서 버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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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군사 작전들을 전면 중단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집트에서의 처참한 패배로 아테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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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권은 위축됐고 제국의 토대는 흔들렸어요. 이쯤 되자 아테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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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동맹이란 착각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동맹국들을 더욱 가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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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붙이기 시작했고 진압한 반란국은 조공국으로 전락시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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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후로 더 이상 델로스 동맹 회의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테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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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으로 모든 사안을 결정하게 됐죠. 아테네는 이제 완전한 제국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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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렸습니다. 한편 그 사이 기원전 4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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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스파르타 정책을 펼치다가 도편 추방됐던 키몬이 아테네로 돌아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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됩니다. 10년 세 페리클래스 체제가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보고는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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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투쟁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어요. 반대로 페리클레스도 아테네의 키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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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와의 협치를 구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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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권력자간 협치가 이루어지면서 아테의 내부에 안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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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왔어요. 이후 페리클레스는 키몬에게 스파르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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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을 맺는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키몬은 흔쾌히 자신이 그 협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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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어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두 국가는 기원전 451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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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년까지 5년간의 휴전 조약을 맺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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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그리스의 분쟁에서 해방되자 키모는 페르시아의 주요 해군 기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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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로스 원정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페르시아와의 분쟁을 끝내지 않고서는 아테네의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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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기원전 450년 키모는 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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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승리를 거뒀어요. 다만 기원전 4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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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모이 포위 작전 도중 사망하고 말았죠. 향년 60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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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몬이 죽자 페리클레스는 더 이상의 전쟁은 아테네를 갉아먹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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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어요. 이제 페리클레스는 힘을 휘두르기보다 지켜내는 지도자가 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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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습니다. 그는 전쟁보다는 외교로 국제 관계를 풀어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고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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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페리클레스는 칼리아스 장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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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 페르시아와의 협정을 시도하는데요. 마침 페르시아의 황제 아르타크세르크세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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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클레스와 뜻이 맞아서 소위 칼리아스 평화 조약이 맺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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됩니다. 그렇게 기원전 449년 공식적으로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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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됐어요. 한편 페르시아와의 평화 협정이 끝난 후 기원전 4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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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가 약해진 틈을 타서 태배가 아테네와 다시 한번 카이로네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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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서 맛붙게 됩니다. 승리한 태배는 보이오티아 전체를 수복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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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의 속국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이거 해볼만 하겠는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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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둘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이에 페리클레스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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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보이아로 군대를 이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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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보이아에 가는 도중에 난대없이 메가라가 아테네와의 동맹을 파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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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겁니다. 그런데 사실 진짜 문제는 메가라의 동맹 파기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메가라가 동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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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하는 순간 치고 올라오는 스파르타가 문제였죠. 마침 휴전 협정 기한도 끝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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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는 다른 도시 국가들과 보조를 맞춰 메가라를지나 아티카 반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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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군했고 페리클레스는 부랴부랴 에우보이아에 있던 군대를 뺏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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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로 돌렸습니다. 그런데 또 어찌 된 일인지 스파르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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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순간에 아테네를 공격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 버려요. 이에 관해서는 페리클레스가 스파르타 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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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을 줘서 회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스파르타로서도 그 제안이 나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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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았던게 또 전투를 시작하기에는 지난번 타나그라 전투 때처럼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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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없이 사상자만 발생할 공산이 컸고 무엇보다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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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완성한 시점이어서 성벽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리면 딱히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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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어요. 한편 위기를 벗어난 페리클레스는 중단했던 에우보이아섬 반란 진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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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섰어요. 잔혹하게 반란을 진압한 그는 귀족들을 모조리 축출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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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전체의 민주정을 이식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당면한 과제를 마무리 짓고 나자 이제 페리클레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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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에 이어 스파르타와도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를 했어요.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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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치르면서 양쪽 모두 심각한 손실을 입었고 무엇보다 누구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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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으니까요. 또 아테네는 육지에서 스파르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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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서로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됐습니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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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아테네뿐 아니라 스파르타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둘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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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맞물려 기원전 446년에서 445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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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가는 겨울 30년 평화 조약이 맺어지게 됩니다. 아테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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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획득한 영토를 모두 포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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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는 아테네 제국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고요. 그렇게 그리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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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의 스파르타와 에계해에서의 아테네로 나뉘게 됐어요. 일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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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몬이 꿈왔던 세상이죠. 이렇게 평화가 이루어지자 페리클레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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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전쟁으로 파괴된 아테네를 재건하는데 온 힘을 쏟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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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국들에게 강제로 거둔 돈으로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건축 사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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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렸고 급별을 줘서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도록 해서 민주정을 확립시켰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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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철학과 예술를 장려함으로써 아테네의 번영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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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안정기에도 불구하고 잠재 불안 요소는 있었어요. 일단 어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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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이 승리로 맺은 조약이 아니다 보니 강한 구속력이 작동하지 않았고 사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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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쪽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파괴할 수 있는 구조였죠. 또 무엇보다 양쪽의 소수 매파들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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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의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아테네의 매파는 지금 한창 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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뻗어나가야 할 시기인데 그 팽창이 조약 때문에 가로막혀 있다며 불만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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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메파들은 예전에 자기들을 쳐다보지도 못하던 아테네와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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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게모니를 나눠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끌어올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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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매파들은 기회만 온다면 언제든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18:32
생각했습니다. 주변 국가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코린토스는 아테네가 메가라 편에 서서
18:39
자기들을 공격했던 일을 잊지 않고 있었고 태배는 과거 자기들 땅의
18:45
민주정을 이식해서 사람들 정신을 망가뜨린 아테네에 분노하고 있었어요.
18:52
이처럼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와중에도 위험 요소가 산재해 있었기 때문에
18:58
언제 다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30년 휴전으로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19:06
순조롭게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는데이 두 나라의 평화 의지를 시험하는
19:13
사건이 하나 벌어집니다. 일명 사모스 반란이에요. 평화 조약을 맺은지
19:19
5년이 지난 기원전 441년 이오니아 지역의 사모스 섬과
19:25
밀레토스가 중간에 끼인 도시의 통제권을 두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19:31
해군이 없는 밀레토스는 아테네의 중제를 요청하게 되죠. 그런데
19:36
해군역을 갖춘 사모스는이 제안을 거부했어요. 그러자 아테네는이를
19:42
자기 리더십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직접 함대를 이끌고
19:49
사모스섬을 공격했고 승리를 거뒀습니다. 사모스섬의 과두 지배층을
19:54
민주 정부로 바꾸고 막대한 배상금을 부과했으며 아테네 군대를 주둔시켰어요. 그런데 사모스
20:01
과주의자들은 페르시아로 몸을 의탁했고 페르시아 총독이 이들을 도았어요.
20:08
그렇게 페르시아에서 힘을 얻은 사모스 과도주의자들은 때를 기다렸다가 야습을
20:14
해서 사모스섬의 민주주의자들과 주등군을 축출해 버립니다. 이런
20:19
사모스섬의 반란 소식은 제국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이는 반란의 연쇄를
20:25
촉발하게 됩니다. 당연히 스파르타가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죠. 평화 협정을
20:31
맺긴 했지만 지금이야말로 경쟁 마테네를 완전히 무너뜨릴 저로의
20:36
기회였으니까요.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스파르타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20:42
정확히 말하면 펠로폴네소스 동맹 가운데 유일하게 아테네에 대적할
20:48
함대를 건조할 수 있는 코린토스가 개입하기를 거부했죠. 코린토스는
20:53
아테네를 증오했지만 아테네가 지금까지 평화 협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20:59
판단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원한보다는 평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21:06
결국 스파르타와 코린토스는 전쟁이 아니라 아테네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21:12
선택합니다. 이로써 반란국들의 희망은 끊어졌죠. 페리클레스가 다시 함대를
21:19
이끌고 가서 9개월의 포위 끝에 기원전 439년 사모스의 항복을 받아냈고이어서
21:27
비잔티움을 함락시켰습니다. 사모스섬 반란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21:33
평화를 위해 얼마나 자재력을 발휘하고 있는가를 보여준 사건이었어요.
21:39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협정은 깨지고 본격적인
21:45
펠로포네소스 전쟁이 발발하게 되잖아요. 대부분의 큰 전쟁이 그렇듯이 펠로포네소스 전쟁도 작은
21:53
정치적 분쟁에서 시작됐습니다. 바로 에피담노스라는 곳에서의 분쟁이었어요.
22:00
이곳은 그리스 변방에 위치한 폴리스였는데 기원전 436년
22:05
민중파와 과두파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습니다. 내전 끝에 민중파가
22:11
과둥파를 추방했고 추방당한 과두파는 에피담노스 주변 비그리스인 일리아와
22:17
연대에서 다시금 에피담노스를 포위했죠. 이에 포위당한 에피담노스 민중파는
22:24
코르키라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에피담노스는 코르키라의 식민지였어요.
22:30
그런데 코르키라는 당시 대회적 중립 정책을 펼치고 있어서 민중파의 도움
22:36
요청을 거절했죠. 그래서 그들은 이번에 코린토스로 갑니다. 코린토스는 코르키라의 모도시였는데요. 그러니까
22:43
코린토스가 코르키라 사람들을 이주시켜서 식민지를 세운 겁니다.
22:48
에피담노스 민중판은 만약 지원을 해 준다면 코르키라가 아닌 코린토스의
22:54
식민지가 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어머니를 패싱하고 바로 할머니 밑으로
22:59
들어가겠다는 거죠. 코린토스는 혹했어요. 코린토스는 자기 식민지인
23:04
코르키라와 사이가 나빠서 수세기 동안 싸움을 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3:10
그래서 코린토스는 에피담노스 민중판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23:15
한편 코린토스가 에피담노스 민중파에 호응했다는 소식을 듣자 코르키라는 더
23:22
이상 중립 정책을 고수할 수 없었어요. 눈앞에서 자기 식민지가
23:27
코린토스로 넘어가게 생겼으니까요. 그래서 코르키라는 부랴부랴
23:33
에피담노스의 함대를 보내 민중파에게 추방된 과두파를 다시 받아들이고
23:39
코린토스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요구했죠. 그런데 민중파로서는 자기들의 생존이
23:46
걸려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고 이에 코르키라는 에피담노스를
23:52
봉쇄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미 때는 늦었어요. 코린토스가 에피담노스의
23:58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그리스 전역에서 새로운
24:04
정창민들을 모집했기 때문입니다. 코르키라는 코린토스와 전쟁을 원하지
24:10
않았어요. 그들은 명분 없는 군사적 충돌를 피하기 위해 코린토스의
24:16
사절단을 보냅니다. 이때 스파르타도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자기 사절단을
24:22
동행시켰어요. 그렇게 이뤄진 회담에서 코르키라는이 분쟁을 제3국에 중제를 맡기거나
24:30
델포의 신탁을 받아서 해결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스파르타는 옆에서 그게
24:35
좋겠다며 맞장구를 쳤죠. 그런데 코린토스는 생각보다 고집이 더
24:41
셌어요. 코린토스의 마지막 대답은 이른 다의 함대와 2천명의
24:46
보병증원이었습니다. 결국 코린토스와 코르키라는 기원전
24:52
435년 바다에서 충돌하게 됩니다. 해상 강국인 코르키라가 승리했고
24:58
심지어 같은 날 코르키라는 에피담노스마저 최종 점령하게 됩니다.
25:03
그런데 자기 식민지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코린토스는
25:09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복수의 칼라를 갈면서 2년 동안 더 큰 함대를
25:14
건설하고 그리스 전체에서 뛰어난 노잡비를 모집합니다. 코르키라는 걱정이 없지 않았어요.
25:22
정확히는 코린토스 때문이 아니라 코린토스 뒤에 있는 펠로포네소스 동맹
25:27
때문이었죠. 중립국이어서 동맹이 없던 코르키라는 결국 기댈 곳을 찾아
25:33
아테네로 갑니다. 애초에 스파르타가 우려했던 상황이었어요.이를
25:39
안코린토스도 아테네의 개입을 막기 위해 사절단을 보냈죠.
25:44
아테네 민회에는 두 국가의 사절단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먼저 코르키라
25:49
사절단이 아테네 시민 앞에서 발언했고 그들의 설득 전략은 결국 일어날 일은
25:56
일어나게 되 있다는 거였습니다. 즉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은 언젠가
26:02
일어날 일이란 거죠. 그런데 코린토스가 자기들을 점령해서
26:07
함선을 흡수한다면 아테네는 육상에서뿐 아니라 해상에서도 펠로포넨 소스
26:13
동맹의 우위에 설 수 없을 텐데 감당 가능하겠냐는 겁니다. 반면 코린토스는
26:20
인정에 호소했어요. 바로 자기들이 사모스섬 발란 때 스파르타와
26:26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설득해서 아테네가 공격을 받지 않았던 것을 기억해
26:32
보라며 말이죠. 맞는 말이었어요. 양측의 말을 다 듣고 난 후 아테네
26:37
민에서는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보통 모든 토론은 하루 만에 끝나는게
26:43
일반적이었는데이 토론은 다음날까지 이어졌어요. 그리고 긴 토론 끝에 결국 코르키라와 동맹을
26:50
맺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코르키라 함대가 코린토스로 넘어가면
26:56
힘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말에 마음이 확 거예요. 다만 페리클레스는
27:02
코르키라에게 공격에는 참여하지 않고 방어만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이는
27:07
절묘한 동맹 방식이었는데요. 즉 방어를 통해 코르키라 함대를
27:13
코린토스에게 빼앗기는 건 막되 공격을 하지 않음으로써 스파르타와 괜난
27:19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방식이었죠. 그런 마음으로 아테네는 코르키라의
27:24
겨우 열척의 함대를 보냈어요. 전면전을 할 생각이 없으니 코린토스도
27:30
싸우지 말고 돌아가라는 메시지였죠. 그렇게 기원전 433년보타
27:37
전투가 벌어집니다.이 전투에서 코린토스는 아테네의 기대와 달리
27:43
150척 함대로 코르키라 120척 함대를 공격했어요. 이때만 해도
27:48
아테네는 거리를 두고 지켜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곧 코르키라 함대
27:53
70척이 파괴되면서 동맹국의 패배가 확실시되자 아테네는 직접 나서지 않을
27:59
수 없게 됐어요. 그런데 또 그러자니 함대 수가 너무 적었습니다.
28:05
바로 그때였습니다. 수평선 너머에서 새로운 아테네 함대가 등장하기 시작한
28:10
거예요. 아테네의 결정으로 추가 파병된 함대였습니다. 코린토스는 굉장히 당혹스러웠어요.
28:17
안 그래도 스파르타가 코린토스의 도발 행동에 불만을 내비치고 있었는데 만약
28:23
자기들 때문에 평화 협정이 깨지기라도 한다면 펠로폴네소스 동맹에게
28:29
버림받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안 좋은 상상을 키워가던 코린토스는 결국 최종 후퇴 결정을
28:37
내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코린토스의 분이 풀리지 않았다는
28:43
겁니다. 코린토스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어떻게 해서든 스파르타를 끌어들려 복수하기로
28:50
결심했어요. 그리고 코린토스의이 계획을 알아차린 아테네는 그에
28:55
대응하는 준비를 해야 했죠. 그 일란 중 하나가 바로 애계해 북부
29:02
할키디키 반도의 포티데이아의 최후 통첩을 보내는 거였습니다. 포티다이아는 아테네의 동맹국인 동시에
29:10
코린토스의 식민지였거든요. 아테네는 코린토스가 복수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29:15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뒤통수를 안전하게 해둬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29:22
결국 아테네는 함선 세척과 처녀의 병력을 포티다이아에 보내서 자발적
29:28
무장 해제와 코린토스와의 단절을 요구합니다. 포티다이아는 뜬금없는
29:33
아테네의 요구가 황당했지만 일단 앞에서는 비위를 맞춰줬어요.
29:38
그리고 뒤로 스파르타의 사절을 보냈죠. 이후 포티다이아는 스파르타의
29:44
지원 약속을 받자마자 곧바로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기원전 432년 스파르타의
29:51
사절을 보내서 전쟁을 일으키기를 촉구했죠. 코린토스 사절단에는
29:57
아이기나와 메가라도 포함되 있었는데요. 특히 메가라는 잔뜩 화가
30:02
난 상태였습니다. 그 이유는 아테네가 포티다이아로 출격할 때쯤 메가라의 아테네 제국 내
30:10
모든 한구와 시장 이용 금지를 명하는 경제 봉쇄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30:16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경제 제재였어요. 당시 스파르타는 두 명의 왕 중
30:23
플레이스토가 추방되고 아르키다모스 왕의 단독 체제를 유지하는
30:29
중이었는데요. 아르키다모스는 페리클레스와 친분이 있어서 서로 선을
30:35
넘지 말자는 안묵적인 합의가 있었죠. 그래서 꽤 오랫동안 평화 체제가
30:41
유지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주요 동맹국들이 몰려와서 강한 어조로
30:46
아테네의 행동에 불만을 표하니 그 평화 기조를 유지하기가 힘들었습니다.
30:52
게다가 마침 코린토스 사절들이 회담에서 스파르타인의 마음에 확 불을
30:57
붙이는 연설을 해 버리죠. 아테네인들은 혁명적이고 행동파입니다.
31:03
그런데 당신 내 스파르타인을 보세요. 도무지 적극적 행동을 하는 법이 없죠. 당신들이 가진 능력보다 덜
31:10
행동하고 지나치게 신중합니다. 어쩌면 막말처럼 들릴지도 모르는이 말 속에
31:16
담긴 진짜 뜻은 저렇게 적극적인 아테네는 앞으로 더욱 강력해질 것이고
31:22
소극적인 스파르타는 결국 아테네에게 해계모니를 빼앗기 거란 말이었어요.
31:28
이때 스파르타 민회는 전쟁을 하는 쪽으로 의견이 확 기울어 버렸습니다.
31:34
오직 아르키다모스 왕만 전쟁이 가져올 위험성을 경고하며 마지막까지 버텼지만
31:41
소용 없었어요. 스파르타와 펠로포네소스 동맹국들은 마침내
31:47
아테네와의 교전을 가결했습니다. 그런데 스파르타는 섣불리 30년 평화
31:54
조약을 깨자고 달려들진 않았죠. 대신 아테네의 사절을 세 번이나 파견해서
32:00
전쟁이냐 평화냐 물었습니다. 페리클레스의 목 가문에서 200년 전
32:05
신성 모독을 했다는 이유로 페리클레스를 추방하라거나 메가라 봉쇄을 철하고 포티다이아에서 철군하며
32:13
아이기나의 자주권을 돌려주라고 했어요. 심지어 제국을 해체하라는
32:18
요구까지 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평화 협정에 기재한 중제 조항을 따르지 않고 자꾸만 무리한 제안을 하는
32:25
스파르타가 전쟁을 원한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오는 사절마다
32:31
족쪽 거절 의사를 표했죠.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갑자기 스파르타가
32:37
요구 사항을 하나로 줄여서 메가라 봉쇄력만 풀면 무력 충돌은 없을
32:43
거라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이는 이는 스파르타 내부에서 아르키다모스의 입지가 올라갔다는 걸 의미합니다.
32:51
이에 아테네인들은 전쟁을 피할 수 있게 됐다며 좋아했어요. 메가라 봉쇄력만 풀면 그만이니까요. 그런데
32:58
웬 일인지 페리클레스가 메가라 문제도 조약에 규정된 중제에 맡겨야 한다고
33:04
고집을 피웁니다. 아테네인들은 무슨 전쟁도 아니고 쓸데없는데 집착한다며
33:11
페리클레스에게 항의했죠. 그런데 페리클레스는 절차에 따르지 않고
33:16
자기들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는 건 동등한 자격이 아니라고 봤어요. 만약
33:22
이번에 양보를 한다면 스파르타 매을 잘못 길드리는 것이고이는 오히려 전쟁
33:28
가능성만 키우는 꼴이 된다는 거죠. 결국 페리클레스는 마성의 연설 능력으로 아테의 시민들을 설득합니다.
33:36
그런데 페리클레스가 완고하게 나간 이유가 또 하나 있었습니다. 만약
33:41
상황이 안 좋아져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아테네가 필승할 거라고
33:47
생각했던 거예요. 아테네는 스파르타보다 경제력도 앞서고 동맹국
33:52
규모도 더 컸으며 무엇보다 강한 함대가 있었죠.이를 이를 토대로 그는 장벽 안에서 문을
33:59
걸어 잠그고 장기간 버티면 결국 아테네가 승리할 거라고 내답습니다.
34:05
그러니 최악을 각오하고서라도 스파르타에 끌려다니지 않기로 한 거죠.
34:11
그렇게 두 국가는 치열한 전쟁 준비에 돌입합니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딱히
34:17
전쟁을 걸어오지는 않았어요. 그저 긴장감만 돌 뿐이었습니다. 또
34:22
이러다가 가열된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34:27
그런데 평화를 바라지 않던 제3국이 나서서 지체없이 전쟁에 방화세를 당겨
34:33
버리는데요. 바로 태배입니다. 태배는 전쟁을 통해 자기 영향력을
34:40
확대하길 바랐고 혹여 스파르타가 발을 뺄까 봐 자기들 성장의 최대
34:46
걸림돌이었던 플라타이아를 기원전 431년 기습해 버린 겁니다. 그런데
34:53
곧바로 플라타이아의 반격을 당해 전 병력이 사망하고 말았죠. 이에 태배는
34:58
이번엔 기습이 아니라 대대적인 공격에 나섰어요. 플라타이아도 전 병력을 동원해서 태배와 맞었고요. 이런
35:05
상황에서 아테네는 원군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플라타이아는 페르시아와 마라톤 전쟁
35:13
때 유일하게 아테네의 원군을 보낸 작지만 항상 을이 있는 우방국이었기
35:19
때문이에요. 또 아테네가 나서자 스파르타도 나서지 않을 수 없었죠.
35:25
그렇게 30년 평화 협정이 14년 만에 깨지게 되고 기원전 431년
35:31
3월 본격적인 펠로폴네소스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35:36
스파르타와 아테네 모두 전쟁을 피하기 위해 공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35:42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두 국가는 결국 전장토에서 마주서게 됐죠.
35:48
2500년 전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이 전쟁을 기록하며 신흥강국 아테네에
35:56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이 무려 27년 간의 전쟁을 불러왔다고
36:01
분석했습니다.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변방의 작은 도시
36:08
에피담노스에서 시작된 내전이 결국 그리스 전체를 전쟁으로 몰고 갔듯이
36:14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도 어디선가 작은 불씨가 타오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투키디데스가 남긴 경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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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역사는 반복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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