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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대로 담긴다

| 방송/시사평론
ZyenYa 2021. 3. 26. 23:46

자신은 늘 맞다 

그릇이 작아도 맞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자신을 부정하는것

늘 자신있게 자기가 원하는대로 살아야 한다

그릇의 크고 작기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면 목사에게 끌려다니게 된다 

당당하게 자신을 살어라 

그릇이 작다고 크게 하지 말어라 고무풍선도 용량이 따로 있다 크게 불면 터진다 

그릇이 작으면 현미경을 보면 되고

그릇이 크면 망원경을 보면 된다

다 각자의 용도가 따로 있는것

용량이 커져라는 말은 창고스타일인 O형이나 철학스타일인 사수자리가 잘하는 말이다

상대가 하는 말의 내용보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의도를 꿰뚫어볼수 있어야 한다

말을 하는 의미는 상대의 속셈을 알아내는데 있다 자신의 속셈을 털어놓는건 아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상대가 아니면 상대를 하지 말어라 

상대가 아니면 상대가 묻는 질문에 응대를 하지 않을줄 알아야 하고

상대가 아니면 상대의 글에 댓글따윈 달지 말어라

상대가 아닌 사람하고 다투지 말어라 격이 떨어진다 

무형의 바람결처럼 스쳐지날줄 아는것도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상대가 아닌 사람의 도발은 그가 모르는걸로 진지하게 대접해라 

 

----------------펌---------------

그릇에 따라 담긴다. 담고 싶어도 그릇이 작으면 담을 수 없다. 담을 수 없으면 쉽게 넘쳐 버린다.

 사람은 종종 그릇으로 비유된다.

그릇이 작으면 상처를 잘 입는다. 누가 던진 말 한마디를 감당할 수 없다면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과 잘 부딪힌다면 그릇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사람을 품으면 부딪히지 않는다.


 분노는 감정의 범람이다. 용량이 적으면 분노가 잦아진다.

미움의 감정에 자주 빠진다면 그릇에 문제가 있다. 사람이 쉽게 미워진다는 것은 속이 좁다는 뜻이다.

열등감도 작은 그릇 때문이다.

칭찬에 따라 춤을 춘다면 그릇의 용량이 작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좀처럼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상대가 나를 비난해도 그를 위해 축복을 해 준다면 큰 그릇이다. 작은 호수는 작은 돌멩이 하나만 던져도 파문이 일어난다. 큰 강은 웬만해서는 변함이 없다. 돈이 갑자기 많이 들어와도 별 동요가 없다면 그릇이 괜찮은 편이다. 돈이 조금만 생겨도 사람이 변하면 많은 부를 담기에는 그릇이 작다고 할 수 있다. 높은 자리에 올라도 티를 내지 않는다면 제자리에 앉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릇은 품는 용량을 말한다. 많이 품을수록 큰 그릇이다. 용량을 결정하는 것은 인격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도 품을 줄 안다면 큰 그릇이다.

편 가르기를 잘하는 사람은 그릇이 작기 때문이다. 위기가 찾아와도 동요 없이 대할 줄 알아야 큰 그릇이다.


 인생을 풍요롭게 살고 싶다면 그릇을 키워야 한다. 그릇이 인생의 사이즈다. 그릇을 그대로 둔다고 저절로 커지지 않는다. 틀이 고착되지 않도록 고정된 틀을 지속적으로 깨야 한다. 한가지 틀만 고집하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그러므로 사고의 유연성이 과제다. 사고에 수축성이 없으면 그릇이 터지는 사고가 일어난다. 너무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살면 삶은 빈곤해진다. 생명 걸 일이 아니면 적당하게 대할 줄 알아야 한다. 반대자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어야 한다. 크게 생각하고 다르게 사고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한 태도에서 그릇의 용량이 결정된다.

다름을 적으로 보는 이분법은 세상을 살벌하게 만든다. 다른 것은 그냥 다른 것이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는 세상이다. 모두가 나와 같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일이다. 다름이 정상이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함께 공존하는 법을 배우면 삶이 풍요로워진다.

 꽉 막힌 사람은 스스로를 질식 시킨다.

세상에서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서울 안 가 본 사람이 이긴다. 우기는 데는 도리가 없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들여 줄 여유공간이 없다. 자신도 모르게 까칠해지고, 배타적인 사람이 된다.

 

늘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두루두루 만나면서 살아야 한다.

내 마음에만 드는 친구, 고향친구, 동창생만 늘 만나고 산다면 이미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우물 바깥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모두 이단아로 취급하는 누를 범하게 된다. 다양하고 특별한 만남을 통해 그릇이 자란다. 종종 대가(大家)를 만나는 경험을 하는 것이 좋다. 좁은 울타리를 벗어날 만남들이 필요하다. 별것 아닌 것을 너무 강하게 주장하면 주변의 사람들이 점점 떠난다. 함께 숨을 쉴 여유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계선을 부수고 나와야 한다.

 몽골인의 시력이 가장 좋다고 한다. 그들은 먼 지평선을 매일 보고 산다. 시야가 넓다. 성인식을 치를 때는 끝도 없이 펼쳐지는 지평선 너머로 말을 타고 갔다 온다고 한다. 자신의 동네를 벗어나 보는 경험이 중요하.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둘러 보고 와서야 성인이 된다. 비행기를 타고 땅 아래를 보면 전혀 다른 세계다. 자기 영역에만 매여 있는 사람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자기의 것만 최고인 줄 알면 착각이다.

 세상에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고수들이 많다. 세상은 생각보다 경계선이 넓다. 가만히 있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편협한 인간이 된다. 마음과 생각을 넓히지 않으면 나 하나도 살아가기 어렵다. 그릇 키우는 작업을 계속해야 고립을 면할 수 있다. 그릇이 클수록 삶은 자유롭다. 큰 그릇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큰 그릇이 되면 주변에 사람이 모인다. 복을 구하는 것보다 담을 그릇이 더 중요하다.

 그릇대로 담긴다. 그릇은 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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